푸르고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주위로 수풀이 대지를 감싸고, 그 수풀 사이로 자유로이 뛰노는 생명체들이 사는 세계가 있었다. 세상을 감싸는 세계수의 주위를 맴돌며 돌아다니는 거대한 생명체들의 울음소리들이 바다 속 돌고래들의 울음소리처럼 공중에서 울리면서 신비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아래의 작은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작은 집 근처에서 과일을 따거나, 식물을 가꾸고, 곡식을 거두며 성실히 일을 해나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새로운 탐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로, 우리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한 번 이 숲의 끝에 가보는 게 어때? 이 넓은 숲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새 수인 쵸코가 여우 수인 타로에게 오늘은 어디로 놀러갈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타로는 쵸코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꿈을 품은 채 좀 더 장대한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얘기에 풍뎅이 날개를 달고 있는 어린 인간 모습의 소녀가 품에 안은 공을 더욱 자신의 가슴 쪽으로 밀착한 채 몸을 떨었다.

 

“그, 그래도 돼? 마을에서 엄청 멀어졌다가 무슨 일을 겪으려고?”

 

“하여간 실피는 겁쟁이라니까! 맨날 혼자 공 갖고 놀지만 말고, 좀 넓게 포부를 갖고 뛰어가야지! 날개도 달렸으면서 왜 좀 더 멀리 가 볼 생각은 안하는 거야?”

 

“그, 그건 날개랑 상관없잖아. 히잉.”

 

“실피, 너무 괴롭히지 마. 타로.”

 

“난 괴롭히는 게 아니야. 쵸코.”

 

 

타로는 다리로 당당히 땅을 짚고 이 숲에서 뛰어놀 때부터 넓은 세상에 가보는 것을 언제나 꿈꿔왔다.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생명체들. 그런 게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타로는 밤잠을 설쳐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장을 두근거리며 ‘모험’이라는 마법에 언제든지 매료돼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친구들은 자신처럼 그런 꿈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 탐험 동료로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증말, 설령 둘 다 안 간다고 해도, 난 갔다 올 테니까. 집들이나 잘들 보셔!”

 

“알았어. 같이 갈게. 대신 해가 지는 시간까지 해서 도달하는 지점에서 돌아오자. 너무 늦으면 엄마가 걱정하실 거야.”

 

“쵸코, 그런 것은 모험이라고 하지 않아!”

 

쵸코의 의견은 무시하면서 뛰어나가는 타로를 쵸코가 급하게 쫓아갔고, 실피도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급하게 두 아이들을 쫓아갔다.

 

그런데 힘차게 나가던 타로가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고 하자, 타로를 받아주는 포근한 존재가 있었다. 타로는 코끝에 닿는 부드러운 천 조각에 대한 감각에 머리를 들어 올려, 자신을 안아들고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세계수 안에 자라고 있는 푸른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푸른 머릿결을 가지고, 그에 대비된 루비 보석의 붉은 색깔 눈동자를 품고 있는 소녀가 타로를 안고 있었다. 타로는 그 소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황급히 그녀한테서 물러나려고 하였다.

 

“아, 아오이님?!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디 다치지 않았지? 그렇게 뛰면 넘어지니까 조심해.”

 

“네, 네에.”

 

얼떨떨하게 꼿꼿하게 허리를 핀 채로 차렷 자세로 굳어버린 타로를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오이의 손길은 부드럽고 아늑한 솜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로는 그 감각에 이 친절한 소녀에 대한 예의를 하마터면 망각할 뻔했지만, 다행히 뒤에서 쫓아오던 두 친구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타로, 너, 아오이님한테 무슨 실례를 저지른 거 아니지?”

 

“아, 아니야.”

 

“그럼. 타로는 잘못 없단다. 오히려 내가 오랜만에 포근한 털을 만질 수 있어서 좋았는걸. 후훗.”

 

“네?”

 

그 말에 타로도, 쵸코도, 뒤에서 말없이 아오이를 바라보고 있는 실피도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아오이가 타로에게 말을 묻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디 가는 거니?”

 

“아, 저, 이 숲의 끝에 가보고 싶어서요.”

 

“끝?”

 

“네. 이 넓은 숲의 끝은 어딜까 하고요. 그게 오늘 할 모험이에요!”

 

“모험이라.”

 

다시 모험 얘기에 흥분하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타로의 모습에 아오이는 왠지 그리운 존재를 머릿속에서 그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도 타로 같은 밝은 표정을 지어줄까?

 

아오이는 그런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거인에게 말했다.

 

“올, 이만 가요. 손님들께서 오실 시간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아오이님.”

 

“그럼, 얘들아, 너무 늦게까지 놀면 안 된다. 잘 갔다 오렴.”

 

아오이가 손을 흔들며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자, 실피는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쁘다.......”

 

아오이는 저도 모르게 어린 요정 소녀에게 동경의 빛을 뿌리고 가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이 세계에서 고귀하면서 아름다운 수호신으로서 여겨지고 있었고, 아오이 또한 이 세계의 생명체들을 지키기 위해 매일 빠지지 않고 세계수의 관리에 나서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수호신으로 대하고 있었다.

 

 

아오이는 자신과 함께 걷는 푸른 거인과 같이 세계수의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경비를 맡고 있는 거대한 괴수 두 마리의 인사를 받은 후, 아오이는 세계수 씨앗들의 보금자리 안으로 들어섰다. 나무 몸통의 그 어느 곳도 빠지지 않고 제자리를 잡고 잠들어 있는 어린 씨앗들이 새근새근 잠을 자는 소리만이 들리는 침소에서 아오이는 한 어린 씨앗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러자 씨앗은 본능적으로 어미를 찾듯 손을 뻗어 아오이의 손길을 찾았고, 그 손길에 응답해 아오이는 어린 씨앗을 품에 안고 조용히 자장가를 읊어주었다.

그 모습을 거인 올은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듯 그녀의 자장가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오이와 함께 한 때부터 그에게 있어 이 순간은 사랑하는 그녀와 오직 둘이서 있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신처럼 어린 생명체들을 돌보기 좋아한, 다른 세계에서 온 소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조그만 그녀가 어린 생명체들처럼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척 작고 여려보였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오이는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책임감이 있고,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생명체들을 보호하였다.

 

알 수 없는 괴이한 괴물들이 이따금씩 주위의 생명체들을 살해하고, 그 생명체들의 가죽과 뼈를 자신의 소지품으로 삼아 그걸 혼합해 이상한 무기를 만들어 공격하기도 하였다. 더욱 그들은 살해한 생명체들을 유린하는 것을 즐기는 듯, 생명체들이 흘리는 피를 볼 때마다 희열을 느끼는 그 소름끼치는 괴물들을 아오이는 차가운 냉기로 그들을 얼리고, 산산이 부셔버렸다.


괴물들에 의해 희망을 잃어가던 이 세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주며, 아오이를 중심으로 힘을 잃어가던 세계수는 점차 기운을 되찾았고, 생명체들도 마을을 일구거나 다시 자손을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올은 이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준 그 작은 소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 곳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아 살게 되었을 때, 그는 자처해서 그녀의 호위기사가 되기로 하였다. 언제나 수호신인 그녀의 힘이 되고 지켜주기로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잠시 과거에 잠겨 회상을 하고 있던 올은 자장가를 끝마치고 어린 생명체를 다시 제 보금자리에 눕힌 아오이의 표정을 살폈다. 올은 그 표정을 보고 최근에 들기 시작한 걱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가 사랑하는 자연과 생명체들이 웃고 행복해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 이 때에, 그녀는 요즘 들어 부쩍 우울한 표정을 남몰래 짓고 있었고, 그 표정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는 올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어째서 당신은 왜 그런 슬픈 표정을 짓고 계신가요? 아오이님.

 

“잘 자렴. 아가들아. 내 잠시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올 테니.”

 

그리고 그녀는 세계수 안 쪽으로 더욱 들어갔고, 올도 자리에서 일어서 그녀를 뒤따랐다. 세계수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아오이와 올이 가기 쉽게 길을 만들어주듯 가지를 물러서거나, 가지로 탄탄한 다리를 만들어주었다. 올은 그녀를 따라가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아오이님, 손님들이란 누구입니까?”

 

“제 오래된 가족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제가 보냈던 어린 아이가 다시 돌아왔네요. 한 명은 제 오랜 친구이고, 나머지 한 명은 낯설지만 무척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아오이님이 아시는 분들이라면, 아오이님이 계시던 그 이전 세계의 분들입니까? 게다가 가족이라니?”

 

“예. 맞아요. 제 고향의 친구들이 방문한 것 같아요. 하지만 썩 좋은 기분은 들지 않네요.”

 

올은 아오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보다 점점 깊어지는 그녀의 슬픔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는 어떤 원인 때문에 그런 것인지 감조차 잡기 어려웠다.

 

“아마 그 어린 아이가 제 기운에 이끌려 길을 안내하고 있을 거예요. 곧 있으면 이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오겠죠. 슬슬 뒤편에 다 왔을 거예요.”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열린 세계수의 뒷문에는 아오이가 오래도록 그리워하였던 언니의 얼굴이 비추어져 있었다.

 

붉은 불꽃과 푸른 수정은 서로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고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카네는 다시 만난 동생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데도,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자신에게 따져 묻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져 오는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지만, 아카네는 속으로 숨을 고르고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래만이데이. 아오이, 잘 있었나?”

 

“오랜만이야. 언니. 언니야말로 잘 지내고 있었어?”

 

어색한 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어색한 기운은 아카네와 아오이뿐만 아니라, 그녀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영향을 끼쳐 어떠한 대화도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지만, 그 중 유독 그 분위기에 젖지 않은 어린 생명체만이 아오이에게 다가가 살갑게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애교를 부리는 리스키 덕분에 침묵하던 공기가 자연스레 자신의 흐름을 찾고 다시 흐르기 시작하며 다행히 어색한 적막은 깨질 수 있었다.

 

“그래. 어서 오렴. 벌써 이렇게 성장했구나.”

 

벌써 아오이의 키를 훌쩍 넘은 거대한 도마뱀은 연신 아오이에게 애교 섞인 울음소리를 내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곧 자신의 어미의 곁으로 돌아갔고, 리스키는 이아한테도 살갑게 아오이한테 부렸던 애교를 피웠다. 그런 모습을 아오이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당신이 이아 선생님이시군요. 정식으로 만난 것은 처음이겠군요. 어서 오세요.”

 

“네. 근데 정말 제 꿈에 나타났던 그 아오이 씨가 맞으신가요?”

 

“네. 그 때는 당신에게 이 어린 아이를 어떠한 설명도 없이 맡겨버려, 민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민폐는 아니에요. 단지, 저도 지금 상황이 어떤지 잘 몰라서 경황이 지금 없을 뿐이에요.”

 

“그럼,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시죠. 모두들, 절 따라오세요.”

 

이아와 아카네, 아카리, 그리고 리스키도 아오이와 올의 뒤를 따라 세계수의 내부로 들어갔고, 그들은 세계수가 만들어준 나뭇가지 계단을 타고 위로 한 칸씩 위로 올라갔다. 나뭇가지는 겉보기와 다르게 무척 튼튼하게 지어져 있어 보였다. 거대한 올과 리스키를 받치고 있어도 휘어짐 없이 단단한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아와 아카네와 달리, 아카리는 신기함도 잠시, 아오이의 뒤를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자신에게 그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해준 것 외에는 특별한 말 한 마디 해주지 않는 아오이에게 내심 서운한 감정이 들었고, 그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기에, 그녀는 부디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고 그 뒤에 아오이와 편안하게 수다를 떨 수 있기를 바라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세계수 내부에 마련된 한 방이었고, 그 곳을 안내하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러나 리스키는 문 앞에서 올한테 제지당했다.

 

“꼬마야. 넌 여기서 아저씨랑 잠시 기다리자.”

 

[에, 어째서?!]

 

“이 방은 너와 나까지 들어가기에는 좁거든. 그러니 어른들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좀 기다리고 있자.”

 

[으앙, 싫어! 난 엄마랑 같이 있을 거야!]

 

어린 아이의 특유의 칭얼거림을 부리며 떼쓰기 시작하는 리스키를 보고 난처해진 올 앞으로 이아가 다가와 리스키를 어루만지며 달래었다.

 

“착하지. 아가야. 말 잘 듣고 있어야 착한 아이지.”

 

[그래도 나 엄마랑 같이 싶어.]

 

“우리 아기, 기다리기 심심해서 그렇구나? 그리고 엄마랑 떨어지기도 싫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이아에게 얼굴을 비비는 거대한 도마뱀은 자신의 덩치에 걸맞지 않게 떼를 쓰고 있는 모습이 아카네와 아카리는 이미지상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반면, 올은 이아와 리스키의 광경을 많이 본 사람처럼 익숙한 듯 어색하다고 여기지 않아하였다. 리스키는 이아한테 애교도 부리고, 이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쓰다듬어주자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렸는지 전보다 칭얼거림이 줄어들었다.

 

“잘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아기가 좋아하는 간식 만들어 줄게.”

 

[혹시 엄마가 만들어주는 그 쿠키?]

 

“그래. 쿠키 만들어 줄게.”

 

[신난다!!!]

 

신난 아이는 씩씩하게 엄마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짓하며, 올과 함께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오이가 방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아이를 잘 다루시네요. 이아 선생님, 예전에 아이들을 돌보신 적 있나요?”

 

“직접 돌보다는 것보다, 아이들을 상담한 적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리스키를 대하는 것도 그 때의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사람을 상대할 때이지 않나요?”

 

아카리가 이아에게 질문하였다.

 

“흐음, 그렇게 리스키의 겉모습은 신경이 쓰인 적은 없었는데.”

 

“이아 선생은 우리 재단 내 사람들 보다 아예 편안한 일상마냥 완전히 적응해버렸데이.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데이.”

 

아카네가 이아를 신기해하며 칭찬하자, 이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하였다. 아오이는 그런 이아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니면 적어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믿음을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가지기 시작하였다.

 

“역시 당신이라면 제가 가지고 있는 병을 치료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병이요?”

 

아오이는 갑자기 자신의 옷의 윗옷을 벗기 시작하였고, 세 사람은 놀라서 얼굴이 빨개졌으나, 그녀의 행동의 이유를 곧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가슴과 쇄골 사이에 자리 잡은 주먹 크기의 붉은 종양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아카네가 화들짝 그녀에게 물었다.

 

“아오이, 이건 대체 뭐꼬? 언제 이런 게 생긴 거야?!”

 

“이게 내가 재단을 떠난 이유야.”

 

재난을 떠난 이유라니, 아카네는 납득할 수 없었다. 재단은 세계에서 어느 분야든 뒤처지지 않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건 의학기술도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생체 공학에서는 세상에 알려지면 학계를 뒤엎을 이론과 논문들도 보유하고 있었다.

 

“왜 얘기 안한기가? 재단이 그런 종양도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기가?”

 

“이게 내 신체의 세포의 이상이나 병균으로 생겨난 문제라면, 나도 치료를 받았을 거야.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런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어.”

 

“혹시, 그거 정신적 혹은 내면의 문제인가요?”

 

이아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질문하였다. 이아는 아오이의 말에 뭔가 바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이아가 벌레 지식인을 만났을 때, 그가 안고 있던 종양의 형태와 비슷했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생겨난 원인도 비슷했을 것 같았다.

 

“네. 이건 제 마음의 병이 키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온 결과물이에요. 이 곳에서 몇 번이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제 정신력과 다짐은 약하기 그지없나 보네요.”

 

멋쩍게 쓴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오이 씨, 괜찮다면 얘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네. 그러도록 할게요. 그럴 생각으로 당신을 만나고 싶기도 했으니까요.”

 

아오이는 자신의 가슴에 있는 종양 덩어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이야기를 꺼내기로 하였다. 그 흉측한 물질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팽창하고 다시 수축하고 반복하는 거머리마냥 움직이며 아오이를 양분삼아 자신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아가 잠시 살펴본 아카네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 덩어리를 떼어 잘라버리고 싶은 감정이 담겨 있어 보였고, 아카리는 그저 말없이 아오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덩어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전보다 생기를 잃은 듯 눈에 빛은 없었지만.

이아는 다시 아오이에게로 눈을 돌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상담을 치료해서 나간다면, 아오이 씨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리고 전 방향을 제시할 뿐, 그 이상의 것을 해드릴 능력은 없다고 말씀드릴게요.”

 

“그건 당신의 직업의 관례인가요? 아님, 그저 당신의 겸손한 태도인가요?”

 

“겸손하다기보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관례라기보다는 치료과정에서 이루어진 것들도 대부분이 그러하고요.”

 

“그런가요? 그럼, 알겠습니다. 방향만 저에게 제시만 해주셔서도 전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아카네 언니, 그리고 아카리, 둘도 잘 들어주었으면 해.”

 

각각 아카네와 아카리에게 한 번씩 시선을 맞추며 말하는 아오이에게는 무언가 두 사람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두 사람 다 아오이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짐작도 못하는지 감도 못 잡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이아 선생님은 저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다고 한다면?”

 

“저희의 능력과 그리고 그 능력을 발현되는 원천이 발생시키는 현상들에 대해서 말이죠.”

 

이아는 그녀가 언급하는 것이 지금까지 자신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소녀들에 관한 내용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아는 곧 아오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살살 달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다.

심호흡으로 내뱉은 공기가 유독 무겁게 자신을 스치고 가는 감각이 되어 전해져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은 감정과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만들어 내뱉는 노래에 깃들어 있습니다. 처음 마스터에 의해서 이 몸을 갖게 되었을 때, 다른 때보다 감정에 반응하는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노래 할 때면 우리의 노래는 현실에 힘이 되어 발현되었지요.”

 

“노래요?”

 

“네. 지금은 그 누구도 부르지 않는 노래이죠. 저도, 언니도, 아카리도, 그리고 유카리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까지도 부르지 않게 된 ‘노래’였죠.”

 

이아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추는 아오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카네와 아카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도 ‘노래’에 대한 부분은 알고 있다는 듯 아오이처럼 고개를 숙이며 이아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아의 귓가에서 아오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이 부르면 아름다운 노래들이 저희가 부르면 그것이 현실에 구현되어 형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 그게 두렵고, 무서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전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이 무척이나 낯선 존재라고 느껴져 왔어요.”

 

이아는 의문을 품었다. 그녀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부여한 마스터란 사람이 실로 소녀들을 인생의 끝자락으로 계속 내모는 원흉인 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마스터란 사람이 당신들에게 저주를 건 셈인가요?”

 

“그건.......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오이는 이아의 생각을 부정하였다.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이 담겨져 있었다.

 

“마스터는 우리에게 깃들어 있는 저희가 기존에 갖고 있는 스스로의 능력을 좀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이에요. 그런 분이 저주라니, 당치도 않아요.”

 

“기존에 갖고 있는 능력이라면, 아오이 씨가 가지고 있는 냉기의 힘은 마스터라는 사람과는 관계없는 건가요?”

 

“네. 저희가 갖고 있는 능력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힘이에요. 그리고 그 힘들이 마스터의 손에 의해 감정의 영향까지 받게 된 것이었죠.”

 

“어째서 그렇게 한 거죠?”

 

“그건 잘 모르겠어요. 마스터는 노래로 저희가 지닌 능력을 조절하라는 것 같은데, 그 분께 자세한 얘기를 듣기도 전에 그 분은 사라지고 말았거든요.”

 

“네? 왜 사라진 거죠?”

 

그에 대해서는 아오이한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카네와 아카리에게 물어도 얻을 수 없는 답이었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는 유카리를 깨운다고 해도 들을 수 없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단에 있는 모든 소녀들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미궁의 질문이 되어버린 채, 이아의 질문은 그렇게 묻혀버렸다.

해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이, 그가 제시하고 만들어낸 방식을 추적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이아는 그의 발자취를 당장에 찾기보다는 현재의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녀에게 담겨진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다.

 

말 없는 아오이에게 이아가 말했다.

 

“아오이 씨, 얘기는 잘 들었어요. 그렇다면 아오이 씨가 담고 있는 그 덩어리는 아오이의 부정적인 감정이 구현되어있는 형태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아마,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거예요.”

 

아오이의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은 그녀가 말한 내용에서 답이 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고 무서워 부정하고픈 사실, 그녀의 힘에 의해 부서질 현실의 모습을 마주봐야한다는 것. 그건 일전에 아카리와 아카네, 두 사람 모두 겪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여기서는 엄연히 아오이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오이 씨, 아오이 씨는 이전에 자신의 힘 때문에 부서진 세계를 본 적이 있나요?”

 

그 질문에 아오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 숙인 그녀가 몰래 입술을 깨물고 피를 삼키는 장면이 그려지며, 이아도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가진 문제를 직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했다. 그녀가 조금 용기를 내어주기를 바라면서.

 

“아오이 씨, 괴롭겠지만, 말씀해주세요.”

 

“정확히는 부서질 예정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제 노래로 인해 그 존재가 깨어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

 

하지만 한 사건이 그녀에게 그녀의 힘과, 노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음은 분명하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카리가 재단의 실험으로 인해 홀을 2, 3개 정도를 한 번에 만든 적이 있어요. 한 번에 많은 양의 홀을 만들어서인지 아카리는 지쳐서 잠시 쉬고, 연구원들도 다른 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에 궁금해서 그 홀 중 하나에 잠시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약간의 두려운 마음도 있어서 노래를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섰죠. 그리고 들어선 순간, 제 눈앞에 있던 것은 어떤 거대한 산보다도 큰 덩어리가 앉아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오던 노래도 순간적으로 들어갔죠.

하지만 덩어리는 제 노래에 이미 반응한 것처럼 몸을 움직이며 그 거대한 눈동자 하나를 굴려 절 바라보고 있었어요. 자고 있던 것처럼 감겨 있던 그 눈동자의 꺼풀이 열리며 그 검은 동공이 움직였던 순간을 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아오이, 설마 그 때 네가 들어가서 본 것은 그거였던기가? 그런 엄청난 것을 봐서 우리한테도, 재단에도 어떤 말도 못했던 것이야?”

 

“응. 언니.”

 

그 말에 숙연해져 고개를 숙이던 아카네와 달리, 아카리가 반문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때, 덩어리가 움직인 원인이 아오이라는 결정적인 이유가 분명하지 않잖아. 그저 우연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그 거인은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어. 그 거인이 깨어나 움직이는 순간, 세계가 붕괴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그건 단순히 기분 탓인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실제로 그럴 거라고 제대로 알려주는 감각이었어.”

 

아카리도, 아카네도, 그리고 이아도 아오이가 하는 말을 흘러들을 수 없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그저 기분 탓이라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까지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은 이미 일반적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에 대해 알고, 그런 세계에 속한 존재들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었다. 사소한 감각조차 단순히 흘려들을 수 없는 징조가 되어 현실이 되는 세계였기에, 그녀들은 아오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에 어떻게 해서든 그 덩어리가 깨어나는 것을 막고 싶었어. 나중에 자체적으로 조사해보니, 그 덩어리가 잠든 장소가 바로 여기 세계수 밑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가만, 여기 그 덩어리가 있는 세계였던기가?!”

 

“응. 내가 이전에 갔던 그 곳은 아마 이 나무의 지하였겠지. 아무튼 난 이 곳에서 나무를 관리하는 무녀로서, 이 곳의 생명체들이 그 덩어리에 의해 파괴되게 두게 두지 않을 거야.”

 

“아오이.......”

 

이아는 아오이의 다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는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치 아카네처럼 무너질 것만 같은 지친 여력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돌았고, 그것이 그녀를 자칫 부러뜨리게 만들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그렇다면 아오이 씨, 저에게 리스키를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도 이 세계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나요?”

 

“네. 이아 선생님께는 실례를 끼쳤지만, 당신이라면 그 아이를 무사히 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 리스키는 후에 자라 수호신의 역할을 할 괴수로서 자라게 될 것이니까요. 이 곳 세계의 괴수들은 성체가 되면 다른 생명체들의 수호신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조금이라도 수호신들이 많이 있어야 해서요.”

 

“그 덩어리 때문인가요?”

 

“네. 수호신들이 많을수록 그 덩어리가 부리는 영향도 약해지니까요.”

 

“흐음.”

 

그 작은 리스키가 지금보다 더 커져서 수호신 역할을 한다니,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벌써부터 엄마 품을 떠나게 해야하는 건가 하는, 이아는 벌써부터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으엑, 그 녀석이 지금보다 더 커지면, 어떤 의미에서는 곤란한데.”

 

“언니, 괜찮아. 그 때부터는 재단이 아닌, 여기서 생활하게 하면 되니까.”

 

“내 생각에는 분명 리스키는 떼를 부려서라도 이아 선생님 곁에 있겠다고 난리칠기다. 그건 성체가 되어 어른이 된다고 해도 말이야.”

 

“에이, 언니도 그 때는 리스키를 제대로 어른 취급 해줘야지.”

 

“흐음, 이아 선생님이 그 아이를 마마보이로 키울 것 같아서 말이야. 불가능~”

 

“에에, 저, 저 그렇게 안할 거예요!”

 

리스키 덕분에 소녀들 간에 분위기가 잠시 누그러지는 사이, 아오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며 다시금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오이, 왜, 왜그러는 기가?”

 

“이건? 무슨? 아, 안 돼!”

 

황급히 달려나가는 아오이의 모습을 보고 소녀들도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소녀들 몰래 다가오던 그림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 생명체를 잡아먹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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